니체와 브라네스의 편지
분류:리버티책분류:철학 분류:수필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와 게오르그 브라네스(Georg Brandes)가 주고 받은 편지들
1887년 11월 26일, 브라네스가 니체에게[편집 | 원본 편집]
처음 인사드립니다.
저는 1년 전에 당신이 출판사를 시켜 제게 보내주신 흥미로운 책, 《선악의 저편》의 사본을 받았습니다. 근래에도 같은 방법으로 당신의 최신 저작을 받았습니다. 제가 소장한 당신의 다른 책 중에는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과 《도덕의 계보》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둘을 제본소에 갓 맡겨놓았기에 앞선 저서들과 비교하여 읽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제본 작업이 끝나는 대로 차근차근 읽을 겁니다.
그래도 저는 당신의 책들을 제게 보내준 당신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마음을 이 편지로나마 알려드리렵니다. 당신에게 제가 알려졌을 뿐만이 아니라, 저를 당신의 독자로 맞기를 바라는 당신의 마음도 알았으니, "영광스러울" 따름입니다. 저는 당신의 저서에게 발산하는 새롭고 독창적인 정신의 기운을 만끽합니다. 물론 저는 당신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당신의 저서를 처음 읽으면서도 제 견해와 부합하는 면이 많았습니다.
예컨대, 금욕주의 이상에 대한 저평가, 민주주의의 서민스러움에 대한 혐오감, 그리고 당신의 '귀족적 급진주의'에 공감합니다. 그러나 노예도덕에 대한 당신의 경멸은 아직 뚜렷이 와닿지 않습니다. 여성 전체에 대한 당신의 일반론적 견해 중에서도 제 것과 부합하지 않는 것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천성이 달라 서로 편안히 대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당신이 보편성을 지녔다곤 해도 당신의 사고방식과 저작방식은 영락없는 독일인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제가 즐겁게 대화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일 것입니다.
저는 당신의 개인사를 모릅니다. 대학교수이자 박사라는 사실도 제게는 놀랍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지성이 대학교수의 것 같지 않다는 것은 축하할 일입니다. 한편으로는, 당신이 제 책을 읽었는지도 모릅니다. 제 책은 대부분 덴마크의 소박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에 불과합니다. 제 최우수 독자들은 아마 폴란드나 러시아 같은 슬라브계 국가에 있을 겁니다. 저는 지난 2년간 바르샤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프랑스에서 강의했습니다. 그럼으로써 덴마크를 가둬 온 옹졸한 한계를 돌파하려고 합니다. 청년기는 훌쩍 지났으나, 저는 여전히 가장 뜨거운 탐구열정과 학구열의 소유잡니다. 그러니 우리 서로의 생각이 다르더라도 당신의 사상을 배척하지는 않을 겁니다. 저는 옹졸하게 구는 경우는 결코 없습니다. 당신이 이 짧은 편지를 답장할 만한 가치를 지녔다고 생각해 주시면 기쁘겠습니다.
1887년 12월 2일, 니체가 브라네스에게[편집 | 원본 편집]
반갑습니다.
제 독자들은 소수정예입니다. 또한 제가 진실로 바라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소수자나마 있어도 만족스러운' 상황이기에 나는 더욱 행복합니다. 이들은 제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예컨대,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한스 폰 뷜로 ― 바그너에게 NTR을 당한 불쌍한 친구죠 ―, 이폴리트 텐도 있고, 죽은 자를 포함하자면 브루노 바우어와 리하르트 바그너가 있습니다. 당신처럼 좋은 유럽인 겸 문화전도사님도 그런 소수자에 포함된다면 진심으로 기쁘겠습니다.
한편으로는 당신이 난처하게 느끼시지나 않을까 염려합니다. 저도 제 책이 여러 면에서 '영락없는 독일인'의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당신 특유의, 자유롭고 우아한 프랑스식 어법에 특히나 충실한 당신은 이 사실을 더 뚜렷이 느낄 겁니다. 그리고 제 책들을 모호하게 만들지도 모를 가장 큰 이유를 말하자면, 저는 변증법 뿐만이 아니라 이성마저 믿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어느 개인이 "진실한" 자인지 인정받지 못했는지는 개인의 용기와 상대적 위력에 좌우되는 듯합니다.
당신이 채택한 '귀족적 급진주의'라는 표현은 매두 탁월합니다. 이는 제가 여태껏 읽어본 저에 관한 표현 중 가장 명석한 겁니다. 이 사상이 나를 얼마나 멀리 데려왔는지, 멀리 데려갈지 상상하기 두려울 지경입니다. 그러나 어차피 나아갈 수밖에 없으니 앞으로 나아갈 뿐입니다.
라이프치히의 출판사로 제 저작들을 한꺼번에 당신에게 보내겠습니다. 특히 새로 추가된 제 서문을 읽어보시라고 추천합니다. 서문들을 차례대로 읽으면서 저를 어느 정도 파악하실 테니, 모호한 인간의 전형은 아니라고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은 음악인이신가요? 제가 작곡한 《삶에의 찬가》가 곧 출판됩니다. 제 음악이 후대에 알려져 미래의 어느 날에 제 추억 속에서 연주되고 노래되길 기대하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당신이 아는 제 사상들은 제가 죽어서 남길 사상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 철학과 같은 철학은 무덤과 같아, 살아있는 것 사이에서 생겨난 것이기도 합니다. Bene vixit qui bene latuit.(그는 잘 숨어 있었으므로 잘 살았다.) 데카르트의 묘비명은 어찌 이토록 정확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만날 날을 고대합니다.
1887년 12월 15일, 브라네스가 니체에게[편집 | 원본 편집]
안녕하시렵니까.
편지의 마지막 단락을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나저나 시력이 안 좋으시다니 걱정입니다. 세계제일의 안과의를 만나보셨는지요? 시력이 나빠지면 심리적으로도 변화가 생깁니다. 당신을 존경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시력을 유지하고 향상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다 해야 할 겁니다.
당신의 책을 받느라고 답신을 여태껏 미루었습니다. 그러나 소포는 아직 닿지 않았고, 오늘 당신에게 짧게 편지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제본소에서 책을 찾아, 강의를 나가고 문학과 정치에 관한 글을 쓰느라고 바쁜 중에도, 최대한 많이 깊이 읽으려 애썼답니다.
'좋은 유럽인'이라는 호칭은 그러려니 하지마는, '문화전도사'는 좀 껄끄럽습니다. 제가 여지껏 만난 전도사란 다들 "도덕을 가르치려" 했습니다. 문화로 지칭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불신할까 봐 걱정되기도 합니다. 우리 문화 전체가 광신을 조장할 수는 없겠지요? 가능할까요? 광신을 조장하지 않고 전도하기는 불가능합니다. 바꿔 말하면, 저는 당신의 생각보다 굉장히 고립되어 있습니다.
저는 음악에 대한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나마 아는 예술이라면 조각과 회화가 있습니다. 저는 좋은 음악을 즐겁게 감상할 수는 있어도 여전히 풋내깁니다. 한편으로는, 당신의 책에서 공감할 수 있는 견해들을 찾았습니다. 스탕달이나 이폴리트 텐에 (텐의 책은 비록 17년간 안 읽었지만) 대한 호의적 견해에 공감합니다.
제가 '귀족적 급진주의'라는 표현을 쓴 것은 그 표현이 제 정치적 확신을 정확히 정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책에서 피력된, 사회주의와 아나키즘 같은 현상에 대한 즉흥적이고 과격한 견해들은 조금 실망스러웠습니다. 크로폿킨 공의 아나키즘은 어리석지 않습니다. 물론 아나키즘의 명칭은 허망합니다. 대체로 매우 눈부신 당신의 지성도 '진리는 뉘앙스 속에서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경지엔 조금 못 미치는 듯합니다. 다만, 도덕관념의 기원에 관한 당신의 견해는 제게 가장 흥미로운 것으로 보입니다.
스펜서에 대해 제가 느낀 반감을 당신도 공유한다는 사실이 제게 기쁨과 놀라움을 동시에 안겼습니다. 스펜서도 철학의 신으로 통하지마는, 이런 잉글랜드인이 일반적으로 갖는 것 중 하나는 '독일 철학의 패권을 파괴하는 가설을 제외한 다른 가설들을 기각시키고 싶어하는 저급한 지성'입니다.
한편, 저는 당신이 공격하는 파울 레를 베를린에서 만났습니다. 루 살로메와 같이 있었습니다. 레는 조용한 남자이면서도 눈에 띄고, 다소 메마르면서도 편협한 지성인입니다.
어쨌든, 당신의 책을 받아볼 날을 고대하며, 당신이 시력이 더 나빠지기 전에 만나보기를 바랍니다.
1888년 1월 8일, 니체가 브라네스에게[편집 | 원본 편집]
'문화전도사'라는 명칭을 거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도라는 방법보다 더 쉽게 문화에 대한 불신을 조장할 방법이 있을까요? 우리의 유럽 문화란 거대한 문제이지 해답은 결코 아닙니다. 그나저나 제 책이 아직 닿지 않았다니 놀랍군요. 라이프치히의 출판사에 채찍질을 해야겠습니다. 크리스마스랍시고 직원들이 잊어먹기 십상이니까요. 한편, 어떤 출판사도 판권을 행사할 수 없는 ― 사실, 출판사를 못 구했습니다 ― 제 담대한 원고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바로,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제4부입니다. 이 뒤에 있을 내용, 아마 5부도 나오려나요, 등도 고려하자면, 이 책의 올바른 제목은 '자라투스트라가 받은 유혹: 간주곡'이 적당하겠습니다.
에밀 졸라에 관한 당신의 수필은 당신의 다른 에세이처럼, 심리학적 안목에 이끌리는 천성의 소유자라는 것을 가장 유쾌한 방식으로 상기시켜 줍니다. 현대 정신의 최대 난제를 풀어야 할 경우에, 독일 학자들은 자신의 본령을 벗어나곤 하지만, 당신은 그 본령에 충실합니다. 당신은 저보다 더 호의적으로 작금의 독일인을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독일인들은 해가 거듭될수록 꼴사납고 괴퍅해집니다. 예컨대, 《선악의 저편》에 대한 독일인들의 감상은커녕 언급조차 없는 것이 대표적 사건입니다. 제 독자들은 이 책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열정과 고통을 단 0.1퍼센트도 쓰지 않습니다. "비도덕주의자"라는 말이 이들에겐 아무 것도 암시하지 못하는 겁니다.
당신은 "하나의 격동에 관한 장황한 열변"에 대한 의견을 피력할 권리를 지녔습니다만, 그런 열변을 토하는 돈키호테 정신은 지구상에서 가장 명예로운 것에 속합니다.
1888년 1월 11일, 브라네스가 니체에게[편집 | 원본 편집]
문안이오.
그대의 출판사가 일을 깜빡한 게 분명하지마는, 나는 그대의 편지를 고맙게 잘 받았소. 보답으로 나의 책의 교정쇄 ― 안타깝게도 나는 초판본을 갖고 있지 아니 하오 ― 한 권을 보내오. 나의 이 수필집은 여러 시기에 집필되었소. 그러나 하나같이 지나치게 예의 바르고, 찬사만 늘어놓으며, 이상주의적인 기분에 도취된 것들이오. 나는 그것들에 담긴 나의 모든 견해를 현실에서는 결코 말하지 아니하오. 그 가운데 입센에 관한 수필이 확실히 가장 뛰어나지마는, 인용된 시편의 번역은 작은 도움만 되었을 뿐 불행히도 초보적인 것이라오.
외국어로 번역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대의 흥미를 끌 만한 책을 써낸 스칸디나비아의 작가가 하나 있소. 그 이름은 "쇠렌 키르케고르"이오. 1813년에 태어나 1855년에 죽었소. 나는 이 자가 역대급 심리학자라 단언하오. 내가 그이를 주제로 쓴, 1879년에 라이프치히에서 번역되어 출판된 소책자는 그의 천재성을 충분히 조명하지는 못 하오. 이는 그 책이 내가 그의 영향력을 점검하느라 쓴, 논쟁서의 일종이기 때문이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책 가운데서는 가장 섬세하다고는 할 수 있소. 《괴테 연감》의 수필은 분량이 3분의 1 토막 난 것이니, 덴마크어로 출간된 것이 훨씬 더 낫다오. 그러나 그대 폴란드어를 안다면 내 폴란드어 버전을 친히 보내드리오리다.
피렌체에서 발행하는 문예지 《현대 잡지》(Rivista Contemporanea) 최신호에는 덴마크 문학에 관한 나의 논문이 수록되었소. 나는 그대 그 논문을 아직 읽지 아니하였음을 아오. 그러나 그 이탈리아어판은 끔찍한 오역이 가득하오. 나는 그 논문의 프랑스어판을 러시아어판으로 번역하는 것을 승인했으나 번역 검수를 하지는 아니하였소. 더구나 그 이탈리아어판은 러시아어판을 번역한 것이니 ― 우크라이나인이 번역했는지 ― H가 줄곧 G로 바뀌어 있었다오.
나의 저작에서 당신에게 유익한 것이 찾아진다면 나는 기쁘오. 나는 지난 4년간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증오받는 사람이었소. 북유럽의 기레기는 나를 두고 호박씨를 까오. 근래에는 비에른손과의 긴 논쟁 탓인지 독일의 기레기도 나를 일제히 반대하오. 혹, 비에른손의 어처구니 없는 희곡인 《태형》(En hanske)을 읽어 보았소? 그 희곡에서는 남성의 순결을 선동하는 그는 남성들로 하여금 "도덕들의 평등을 요구"하는 여성 대변인들을 상대로 순결서약을 맺게 하오. 스웨덴에서는 이런 무지한 여성이들이 대규모 여성단체를 맺어 "오직 순결한 남자들만 상대로 결혼하리라"라고 맹세하오.
나는 그대의 책 세 권을 반복하여 읽었소. 나의 사유과 그대의 사유를 잇는 다리 두서 개가 놓여 있소. 카이사리즘, '관행에 대한 강박증'에 대한 혐오감, 스탕달에 대한 친밀감 등이 그런 다리이지마는, 대부분은 내게 아직도 낯서오. 그대는 의심할 여지없이 독일의 모든 작가들 가운데서도 가장 의미심장한 작가이오. 독일의 문학계란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 나는 모르오. 그러나 모든 우수한 두뇌는 군대수뇌부나 행정부로 흡수될 수밖에 없어 보이오. 독일의 모든 생활방식과 제도가 가장 끔찍한 획일성을 조장하니, 출판계는 작가정신마저 목조르오.
1888년 2월 19일, 니체가 브라네스에게[편집 | 원본 편집]
문안이오.
"현대성"에 대한 그대의 논문을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게 받아 보았소. 그리하여 나는 이번 겨울, 하늘 높이 날아다니는 새처럼 가장 고귀한 문제를 거닐며 가장 비현대적인 관점으로 현대를 관찰하는라 최선을 다하였소. 감히 고백하자면, 나는 그대 관대한 비판과 조심스러운 판단을 존중하외다. 당신은 그토록 "왜소하고 유치한" 쉬파리들을 검토하는 고생도 마다하지 아니하였소! 파울 하이제마저 검토하다니!
나는 향후 독일을 떠다니며 키르케고르의 심리학 문제들을 탐구하고 당신의 기존 저작에 대한 나의 지식도 갱신하오리다. 이 여행이 내게 가장 좋은 의미에서 유익하고, 엄격하고 거만한 판단력에 유머감각을 기르는 데 이바지하리오.
나의 출판사가 드디어 나의 저작을 발송하였소. 구구하게 사연이나 읊조리는 것은 시간낭비일 터이니, 다만 매끄럽지 못한 일처리를 너그러이 이해하고, 나의 저작도 그 너른 아량으로 읽어주소.
나는 "새로운 독일인들에게" 가장 풍부하고 활기차며 독립적인 책들을 안겨주었다고 자부할 뿐더러 이러한 개성인격이야말로 우리의 가치를 평가하는 위험한 과정에서 발생한 가장 중대한 사건으로 보오. 그러나 이 생각은 오류이거나 지독한 어리석음의 소산일지도 모르니, 나는 나에 대한 어떠한 믿음도 강요되지 아니하기를 바라오.
나의 초기 저작에 대해 말하자면, 스스로 지극한 자유정신으로 생각하는 자를 희생시킨 "지극한 자유정신"이 다비트 슈트라우스를 반대하느라 심술궂고 흥겹게 떠벌이듯이 써서 끔찍한 파문을 일으켰소. 그때 내 나이가 스물에 일곱이오. 그러나 "정교수"라는 이름이 그래 거창한지 권위로 불릴 만한 것을 갖은 자로 인정받았소. 거의 모든 저명인사들은 나의 지지자와 반대자로 갈라졌으며, 모든 신문지면을 나에 대한 논란으로 보도하는 데 잉크를 낭비하였소. 그나마 가장 공정한 견해는 카를 힐레브란트의 수필집 《시대, 민족, 인간》 제2권에서 나타나오. 나를 논란의 중심인물로 만든 빌미는 '박식한 비평가의 노쇠하고 서툰 솜씨를 야유했다'가 아닌, '독일인의 취향을 흉악하고 불명예스러운 악취미로 규정했다'라는 것이었소. 평소라면 사분오열되어 갈려 있던 신학계도 다비트 슈트라우스의 《옛 신앙과 새로운 신앙》만은 만장일치로 찬양하오. 나의 이 책은 독일 문화의 프랑스 문화에 대한 대승이라고 상상하는 것에 대한 최초의 습격이었소. 그리하여 나의 "문화속물"이라는 말은 논쟁을 거쳐 살아남아 여태껏 쓰이오.
내가 그 무렵 쓴 쇼펜하우어와 바그너에 대한 논문을 지금의 관점에서 보자면, 오히려 나의 자기고백과 자기약속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이오. 이 두 논문을 쓸 때의 나는 두 거장의 통일성을 동시에 증류해 낸 최초의 인물이었소. 그런 통일성을 믿는 미신이 만연하는 지금의 독일에서 모든 바그네리안은 쇼펜하우어의 추종자이기도 하오. 내가 젊었을 때만 하여도 바그네리안은 또한 마지막 헤겔리안이었소. 1850년대의 표어가 "바그너와 헤겔"이었다는 것도 마찬가지이오.
나는 《반시대적 고찰》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이에서 위기와 탈각을 겪었소. 이를 또한 몸으로 겪기도 하였소. 나는 4년간 죽도록 아팠고, 거의 죽다 살아났다오. 이 체험은 나의 위대한 행운이었소. 나는 나를 잊었고, 나를 벗어났소. 나는 같은 위업을 두 번이나 이루었소. 그러니 우리가 지금 선물을 교환할 수 있는 것이오. 나에게는 우리가 여행길에 우연히 만나 반가워하고 기뻐하는 두 여행자 같이 생각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