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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편집 | 원본 편집]

박문수 묫자리 설화[편집 | 원본 편집]

조선 후기 어사 박문수가 무주 구천동에서 천운서라는 부사를 벌주고 유안거라는 선비의 억울함을 풀어주었다. 유안거는 박문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지내다 세월이 흘러 세상을 뜨게 되었다. 훗날 박문수가 어사로서 충청도 지방을 순찰하던 중에 어느 산길을 가는데 한 노인이 갑자기 나타나서 큰절을 하면서 "어사님 잘 지내셨습니까? 저는 예전에 어사께서 억울함을 풀어주신 무주 구천동의 선비였던 유안거입니다. 살아있을 때 그 은혜를 갚지 못하여 죽어서나마 이렇게 나타나 감사한 마음을 전하려 하오니 부디 저를 따라와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박문수는 지난날을 떠올리며 반갑고 신기한 마음으로 유안거를 따라갔다. 그곳은 흑성산 자락의 넓고 평탄한 터였다. 풍수지리상 매우 좋은 땅으로 꼽힌다는,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의 명당 자리였다. 박문수가 보기에도 매우 길하고 좋은 땅으로 여겨졌다. 박문수는 '나중에 내가 생을 마치면 이 자리에 묘소를 해야겠구나.'라고 생각하였다.

얼마 후 박문수는 그 자리가 명당임을 확인하기 위해 풍수지리에 밝은 지관을 데리고 흑성산으로 갔다. 지관이 보기에도 꽤 좋은 명당이었다. 한참 둘러보던 지관이 "이곳은 훗날 나라에서 쓰게 될 좋은 자리이니 여기에 묘를 쓰면 반드시 묘를 옮겨야 할 것입니다. 그때 가서 옮기게 되느니 동쪽에 있는 은석산으로 묘소를 정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은석산은 장군이 군사들을 바라보는 형상을 한 곳입니다. 산 밑에 아우내 장터가 있어 오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사께서 장군이 되어 장을 보러오는 사람들을 군사로 삼아 바라보는 형상이 되니 그곳도 길한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니 박문수가 흑성산을 포기하고 은석산에 묘를 쓰게 되었다. 그리고, 흑성산에는 독립기념관이 들어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