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 불가사리 홍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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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okuvateatterinmuistikirja/반공 불가사리 홍길동

오랜만에 쓰는 긴 비평이다. 이번에는 좀 많은 영화를 한꺼번에 비평코자 한다. 《반공 각시탈》, 《불가사리》, 《의적홍길동》으로 총 세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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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편의 영화는 놀랍게도 공통점이 있다. 졸라 옛날 영화라는 거다. 한편으로는 반공영화에 북한영화, 애니메이션과 특촬물이 뒤섞인 비평문이 될는지 모르겠다. 아이 신나.

《반공 각시탈》은 사실 원제가 그냥 《각시탈》이다. 허영만이 그린 그 만화 맞다. 드라마는 잘 맹그렀는데 뜬금없이 반공이 끼어들더니, 웃기지 않은 코미디인지 그냥 대놓고 못 만든 영화인지가 되어 버렸다. 이로써 우리가 여실히 알 수 있는 사실은, 이 시대의 '반공'이라는 소재는 현재의 '정치적 올바름'과 똑같은 위상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반공 예술이라 하면 할 말이 많다. 특히 이 영화는 반공 예술의 극치를 달리는데, 공산주의에 대항한답시고 가져온 이데올로기가 겨우 민족주의라는 것이다. (원래 각시탈이 민족주의적이라지마는.) 그러면서 각시탈이 꼭 하는 말이 "백의민족을 붉은 피로 물들이는 괴뢰 놈들!"이다. 이건 뭐 "빨간색은 피가 연상되어서 소름 끼친다"라는 미디어펜 출신의 어느 윤씨 만화가도 아니고 말이다. 심지어 보다보면 각시탈이 오히려 공산당스러워 보인다. 노멘클라투라의 금덩이를 빼앗아 인민들에게 뿌리고 쇠퉁소를 갖고 빨찌산유격활동을 하고... 나는 지금껏 반공 만화를 보았나? 아니면 공산당 홍보 만화를 보았나? 한편, 여기 나오는 노멘클라투라는 왠지 일본인을 닮았다. 일본도를 갖은 것도 그렇고. 그런데 묘사를 보면 또 왠지 배트맨에 나오는 베인이 연상된다. 각시탈 허리 꺾을 기세로 들어올릴 때마다 계속 베인이 보인다. 이건... 일단 오마주라 치자. 한편, 여기서 이 노멘클라투라가 하는 가장 나쁜 짓이라는 것이 바로, '과외'라는 것이다. 살짝 얼탱이가 가버린다. 한편, 여기에는 재일교포 출신이 나오는데, 솔직히 이 영화를 코미디로 보는 관점에서는 이 재일교포 아해가 가장 웃긴 놈이다. 계속 자기가 남조선에 들락거렸던 얘기를 하면서 '자유대한, 자유대한'이라고 하면서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을 부른다. (이 영화는 전두환 때 나왔다.) 심지어 여기서 나오는 남한의 모습 대부분은 이강토의 말마따나 정말 그 당시에도 꿈 같은 얘기라는 것이다. 북한의 대부분은 리얼하게 묘사하면서 남한의 대부분을 뻥으로 메우면 반공이 무슨 의미란 말인가?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비판하자면, 《반공 각시탈》의 줄거리 전개는 1920년대 신경향파-KAPF 소설에서 나오는 변증법적 전개?(정: 문제 의식 없으며 기존 체제 옹호 및 보수, 반: 문제 의식과 도그마에 대한 의심, 합: 혁명전사! 전위대! 전위당! 파.괘.한.다!)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당시에도 이들은 이데올로기 전개 및 전파에 급급한 나머지 예술로서의 가치가 낮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반공 각시탈》은 이 점을 그대로 답습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KAPF가 유물론적 역사관에 기반하여 변증법적 전개를 했다면, 《반공 각시탈》은 그냥 이전부터 나왔던 민족주의나 자유주의 같은 이데올로기 따위와는 연관없이, 그냥 가족이 다 죽고 없어져서 잃을 게 없어진 이강토가?(참고로 말하자면, 이강토가 동네 사람들에게 욕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이유가 자기 형이 각시탈이라서가 아니라, 결핵걸린 지 어미를 뻐들쳐 놓고 죽었는데도 각시탈 잡겠다고 싸돌아댕겨서다.) 전향한 것으로 보여질 여지가 너무 크다는 점이 큰 비판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반공 각시탈》을 마지막으로 한국의 반공 만화는 끝을 맺었다는 것이다.

《불가사리》와 《의적홍길동》은 북한영화임에도 김정일이 영화광이라 그런지 완성도와 수준이 꽤 높은 편이었다. 이 두 영화에서 강조되는 것은 민중의 저항 의식인데, 이는 홍길동을 주연으로 한 《의적홍길동》에서도 후반부의 분량 40%를 민중 저항에 할애하는 것으로도 여실히 알 수 있다. 《불가사리》의 결말은 북한의 현상을 고려했을 때 매우 특이한데, 바로 이 결말이 시사하는 바는 반전주의와 평화주의, '영원한 영웅은 없다'라는 것이다. 호전적 성격인 김정일-김정은과 우상 숭배되는 김일성을 생각해 보면 이런 영화가 나온 게 용할 지경이다. 한편, 북한의 홍길동은 남한의 이미지와는 달라서 우리가 흔히 연상하는 홍길동의 인상착의와는 전혀 다르며, 미신을 부정하는 북한 사회 특성 때문인지 홍길동이 비범한 탄생이었다는 부분은 통으로 날아갔다. 한편 이 영화에는 원작보다도 중세 봉건적 신분제의 부정과 탈계급주의가 줄거리에서 크게 암시되는데, (물론 원작과 마찬가지로 홍인형은 길동이와 사이가 아주 좋다.) 이러한 점은 결말부에서 홍길동이 서출이니 신분은 왕조차도 바꿀 수 없다고 머뭇거리는 데서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고, 홍길동은 사랑하는 정승댁 딸과 이상향을 바라는 사람들과 함께 배를 타고 떠남으로서 마무리된다. 이 둘은 사회주의적 입장에서, 또한 그 시대를 감안하여도 꽤 높은 수준의 영화이다.

도보시오[편집 | 원본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