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chien Andalou ou : comment j'ai appris à ne plus m'en faire et à aimer la bom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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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okuvateatterinmuistikirja/Un chien Andalou ou : comment j'ai appris à ne plus m'en faire et à aimer la bombe

첫번째로 비평할 영화는 바로 '안달루시아의 개'(Un Chien Andalou)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또는: 어떻게 나는 걱정을 그만두고 폭탄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나'(Dr. Strangelove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이다. 비평문의 제목이야 당연히 '안달루시아의 개'의 원제인 'Un chien Andalou'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또는: 어떻게 나는 걱정을 그만두고 폭탄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나'의 프랑스어 제목, 'Docteur Folamour ou : comment j'ai appris à ne plus m'en faire et à aimer la bombe'를 합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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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영화는 보기에 너무나도 다른 영화다. '안달루시아의 개'는 1920년대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공포 단편 영화로서 하나도 이해 안 가는 영화이고,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또는: 어떻게 나는 걱정을 그만두고 폭탄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나'는 냉전 시대 미국의 블랙 유머 장편 영화로서 목적과 모티브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명확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Elokuvateatterinmuistikirja'의 첫 글이기 때문에 억지로 엮지는 않겠다. 왜냐하면, 저 두 영화는 비합리주의를 바탕으로 한 영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둘은 이성의 '병신스러움'에 대해 적나라하게 凸를 날리는 영화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안달루시아의 개'에서는 중간중간 검은 바탕 흰 글씨의 프랑스어로 필름을 잠깐 끊는다. 해석인즉, '어느 봄날', '16년 전' 등인데, 솔직히 이거 몰라도 이야기는 그냥 연속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게 들어감으로써 영화상의 시간이 꼬이게 되고 관람객은 생각하기를 그만둬 버린다. 마침 영화상 시간 얘기가 나온 김에 인상 깊은 장면 하나를 꼽자면, 후반부에 나오는 '눈깔 파인 당나귀에 그랜드피아노에 얹혀 끌려가는 장면'과 '손이 문에 끼인 장면'이다. 이 장면은 전반부에 나오는 '면도칼로 눈깔을 베는 장면'과 '손모가지 날아간 손'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손바닥에 난 구멍에서 왕개미가 기어나오는 장면도 나름 충격이었지만 앞서 말한 장면만큼 신선하게 놀라운 장면은 없었다. 이건 프랑스어 자막을 읽지도 않았던 첫 관람에서부터 놀랐던 장면이다. 이에 반해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또는: 어떻게 나는 걱정을 그만두고 폭탄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나'는 공간만 바뀔 뿐 시간은 서로 동시에 연속적으로 흘러간다. 한편, '안달루시아의 개'는 등장인물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제작자인 살바도르 달리와 루이스 부뉴엘의 개인사에 비추어 보아 게이 친구였던 로르카를 놀리려던 것이 아닐까 한다. 아닌 게 아니라, 달리는 로르카와 항문성교를 했다! 그것도 달리가 항문을 대어주는 역할로!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와서,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또는: 어떻게 나는 걱정을 그만두고 폭탄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나'에서는 등장인물이 누구를 모티브로 했는지가 행동과 설정을 통해서 뻔히 드러난다. 특히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나치 독일에서 망명한 과학자 가운데 폰 브라운 박사, 핵전쟁에 대한 긍정적 면모를 통해 에드워드 텔러와 폰 노이만 등을 융합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외에도 벅 터지슨 장군은 호전적인 모습을 통해 커티스 르메이를 유추할 수 있다.

이 두 영화의 결말은 결코 밝지 않다. '안달루시아의 개'에서는 바닷가를 산책하던 두 남녀가 모래에 반쯤 파묻혀 썩어 있고,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또는: 어떻게 나는 걱정을 그만두고 폭탄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나'는 결국 소련의 핵무기 발동으로 인해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전 세계가 멸망하고 땅굴에 숨은 일부 인물들만 살아남는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염세적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아무렴 어떨까? 나는 재밌었는데!

도보시오[편집 | 원본 편집]